계속해서 불가능한 것을 놓고 기도해 주세요! | 신두현 목사 | 2024-12-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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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불가능한 것을 놓고 기도해 주세요!” 복음서를 읽어보면, 인간의 실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면들이 많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어갑니다.” 내 힘으로 못 고친다는 것을 압니다. “나의 한계입니다.” 그런데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가능성은 있습니다.” 이때 가장 뜨겁게 기도합니다. 왜요? 예수님이 조금 도와주면 나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한계 + 가능성” 이때 뜨겁게 기도합니다. 종들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회당장님! 딸이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종들의 말은 더 이상 예수님 괴롭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요? 이젠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한계를 느낍니다. 동시에 예수님의 한계도 느낍니다. 예수님도 죽음은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한계 + 불가능”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절망합니다. 기도 포기합니다. 이런 때 좌절합니다. 기도도 막힙니다. 기도가 막힌다는 것은 예수님의 한계를 느끼는 것입니다. 이게 불신앙입니다. 불신앙에서 기도 막힘이 옵니다. 예수님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눅8:50) 하십니다. 불가능에 대해 절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건 믿음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나 같다고 생각하는 내 한계로 보는 시각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무엇입니까? 에수님을 나 같다고 생각하는 데서 벗어나서, 창조주 하나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이름으로 “불가능한 것을 놓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불가능한 게 많았습니다. 가난해서 대학가는 게 불가능했습니다. 결혼하는 게 불가능했습니다. 아파도 병원 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막막함 속에서 항상 불가능 놓고 기도했습니다. 그게 이루어진다면,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습니다. 그때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신 것입니다. 체험적 신앙이 된 것입니다. 믿음이 강력해졌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회보장으로 대부분 해결됩니다. 자기 힘으로 애쓰고 힘써서 다 이룹니다. 낮은 차원의 일에만 매달리게 됩니다. 이러다 보니 자기 생각에 불가능하다는 것은 그냥 절망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시도도 못 합니다. 약해졌습니다. 너무 약해졌습니다. 항상 쓰러집니다. 언제나 멘붕 상태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은 불가능한 것을 놓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승리를 맛보라고 하신 겁니다. 초라한 신앙인이 아닌, 한계가 없는 신앙인이 되길 올해 마지막 주일에 금년도 표어 “능치 못함이 없는 성도, 능치 못함이 없는 교회”를 내리기 전에 다시 묵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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