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과 부조리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시편 10편과 시 73편은 악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다 보면 악인들이 망해야 하는데, 망하지 않는 걸 보게 됩니다.
오히려 악인이 기세가 등등하고 악인이 주도권을 행사하고 오히려 악인이 형통합니다. 머 돈도 더 잘 벌고, 머 잘 죽지 않고 오래 사는 거 같고요, 온갖 갑질을 다 하면서, 시민의 공분을 사고요, 한국에 아직도 친일파 후손들 큰소리치면서 살고 있지 않습니까? 독립군의 후손들은 비참하게 살고요. 못된 사람들은 잘 먹고 잘살다가 죽을 때도 평안히 죽는 것 같고요! 이것이 우리에게 굉장한 낙심을 줄 때가 있지 않습니까? 도대체 이해되지 않는 겁니다.
악인이 형통한 모습 때문에 분노심이 차오르고, 어떤 의미에서 이해가 안 돼서, 막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던 시가 시편 73편에도 나오는데요, 거기 보면, 시 73편 2~7절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73:2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73: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73:4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73:5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악한 자가 적어도 이 땅에 살 때는 잘 먹고 잘살아도 죽을 때는 이를 갈면서 죽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는 겁니다. 오히려 장수하고 잘 먹고 예쁜 간호사 품에 안겨서 죽더라는 겁니다. 화가 안 납니까? 젊을 때, 혈기 왕성할 때는, 막 하나님께 이게 뭐냐고, 시편 기자처럼 부르짖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술도 안 먹잖아요. 맨날 새벽기도하고 열심히 다니는데 간이 나빠지는 사람이 있는데, 악한 사람들, 머 룸살롱 다니면서, 쾌락을 누리고, 머 갑질하고, 허구한 날 술 마시고 허구한 날 술고래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불구하고 돈 좀 있다고 웅담 먹었더니 간이 좋아졌다느니 이런 소리할 때 낙심이 되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여러 가지 내용들 때문에 낙심하고 좌절하고 이게 무슨 딜레마입니까?
몇 주 동안은 특별히 시편 10편을 묵상하면서, 이 주제를 다루려고 합니다. 도대체 악이라는 의미가 무엇이고, 성도가 이런 악의 문제에 직면했을 때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이 땅을 살아가면서 부조리에 접하게 됐을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런 질문을 하면서, 시 10편을 이번 한 주간 적어도 3번은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다음 주에 이어서 묵상한 내용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