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눈이 생기면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시8:3)”
일반적으로 태양, 달, 별, 높은 산, 깊은 골짜기를 볼 때의 반응을 보면 일반적인 사람들의 반응과 신자,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반응이 다릅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놀라운 자연을 바라보면서 경외심을 갖게 되고 또 신격화시키는 그런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이방 사람들 한번 보십시오. 태양을 바라보면서 태양신이 나오잖아요.
또 달을 바라보면서 다이애나 그러면서 달의 신이 나오고 또 별을 바라보면서 별의 신이 나오고요, 아테나 올림픽이 있었을 때, 그리스의 신들을 쭉 보십시오. 대개 보면 자연하고 연결된 신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많은 신화와 전설이 있지요? 이게 일반인들의 생각입니다. 놀라운 자연들을 바라보면서 자연을 숭배하고 세상을 숭배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이게 하나님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반면에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반응은 다릅니다. 온 우주 만물을 바라보면서 자연과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면서 그 아름다움을 찬미합니다. 그러나 그 뿌리가 다른데요, 이 세상 자체, 자연 자체를 두려워하거나 신격화하는 모습이 아니라 그것을 만드신 하나님을 찬미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세상을 경배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과 우주 만물은 창조물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항상 상대적으로 바라보는 눈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신앙이 생길 때 달라지는 눈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이란 건 뭡니까? 아무리 아름답고 아무리 위대한 세상과 자연을 본다 할지라도 거기에 마음을 뺏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본다고 할지라도 그 자체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물질을 좋아한다고 그러지 않습니까? 물질이 힘이 있죠. 좋은 거죠. 그러나 그것을 바라보고 그 속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도 목사지만, 돈 좋아합니다. 하지만 빠지지는 않습니다.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모든 마음과 뜻과 정성을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선물 자체에 빠지지 않고 선물을 주시는 분에게 집중하면서 묵상하는 삶. 그게 성도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건 자연에만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전체에 다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물질에 취해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관계 속에 취해있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권력에 취해있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이런 사람들은 설명만 달리 될 뿐이지, 자연을 숭배하고 자연을 신격화하는 사람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연을 바라볼 때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마찬가지로 우리가 권력이나 물질을 바라볼 때도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항상 바라보는 시각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이게 세상을 바라보는 성도의 눈, 신앙의 눈이라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