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너머의 하나님을 보다
요셉은 결혼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기대감이 있겠습니까? 부인 될 여인은 누구죠? 마리아. 요셉과 마리아 두 사람은 완전한 결혼은 아니고, 정혼한 상태였습니다. 유대인의 정혼이라는 게, 부부로 공식 인정한 사이지만, 잠자리만 안 한 거였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식으로 하면 약혼보다는 좀 더 강한 의미가 있는 거지요? 약혼 후에 파혼은 좀 쉽죠? 그렇지만, 정혼한 남녀는 사회적으로, 부부로 보기 때문에, 정혼한 남녀가 헤어진다는 건 거의 이혼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요셉은 아내인 마리아와 빨리 결혼할 날만 기다리고, 결혼해서 빨리 허니문 베이비 만들어야지! 머 그런 생각도 했을 것 같습니다. 남자들이 좀 자녀 욕심도 많고 하니까요! 그런데, 자기가 사랑한 여자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진 겁니다.
마리아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렇게밖에 생각이 안 되겠죠? 요셉하고는 잠자리한 적이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마리아의 임신 소식에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얼마나 큰 상처겠습니까?
상처받은 사람의 특징을 보면, 처음에 분노합니다. 분노를 컨트롤 못하면 파괴 본능이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막 보복하려는 행동을 하게 되는거죠? 남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소문을 들은 요셉 마음에 막 분노심과 파괴할 마음이 생겼겠지요?
제가 요셉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봐도, 충격과 분노와 상처 속에서 괴로워했을 것 같고요, 마리아를 찾아가서 못된 여자 (배드걸)이라고 악담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큰 상처를 받은 요셉은 다르게 반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1:19절을 보면,
1: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남편 요셉이라고 하지요? 마리아와 부부지간이었는데, 잠자리만 아직 안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딴 남자의 아이를 뱄지요? 머 요셉 입장에서, 요셉의 머리로는 이렇게밖에 생각이 안 들겠지요? 그러니, 얼마나 큰 상처였고, 충격이었겠습니까?
그런데, 요셉은 상처받은 대로 막 행동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상처 너머에 서 있는 하나님을 바라보니까,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말씀해 주시죠? 그런데 이 말씀이 사실은 이해 납득 공감이 됩니까? 성령으로 임신이 되었다는 게 이해가 될까요? 요셉은 이해 못 했을 겁니다. 그러나, 순종했습니다.
우리가 교회 오면, 목사의 설교를 통해서, 수십, 수백 번 듣는 말이 “하나님께 순종하십시오” 이 말이죠? 여러분! 순종이라는 게 무엇입니까? 만약에, 여러분 생각에 “내가 이해하는 것만 순종하겠습니다.” 그러면, 그건 내 수준이죠? 원래 높은 수준의 것들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냥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해주시겠지!” 믿으면서요. 그러면 나중에 알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스케일이 다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충분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기 때문에, 엄청난 일들을 이룰 수가 있는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