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존중이 없는 사람은 추한 인생을 산다

“공감과 존중이 없는 사람은 추한 인생을 산다!”

사람을 살리지 못하는 사람의 특징은 남을 추하게 만듭니다.추하다 못해 만신창이가 되게 만듭니다.조롱하고 비아냥거립니다.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면 조롱과 비아냥의 언어는 버려야 합니다.조롱과 비아냥은 절대 사람을 살릴 수 없습니다.조롱과 비아냥이 몸에 밴 사람은 절대 중직을 맡기면 안 됩니다.이유가 무엇일까요?하나됨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그런 사람의 속사람이 추하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드러내지 못하고,공동체에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자신이 추하니까,남을 추하게 만드는 것입니다.이런 사람은 마귀가 이용하기 안성맞춤인 사람입니다.분열을 일으키기 딱 좋거든요.

한국 야경을 보면서 외국 사람이 물었다고 합니다. “오 뷰티풀.이렇게 야경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가 뭐지요?”한국 사람 대답이 대답하기를, “야근 때문입니다.”라고 했다는 겁니다.이건 병든 인간의 모습입니다.아름다움을 묘사하고 있는데,조롱하고 있지요?이거 병든 것입니다.아름다움조차도 조롱이 되는 것입니다.이런 게 우리 사회에 팽배하지 않습니까?은혜가 사라지니까,조롱과 비아냥이 넘쳐납니다.누구도 존중하지 않습니다.스승도,부모도,목사도.그 배후에 마귀가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고아들을 위해 일생을 헌신하면서 살아가는 마더 테레사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다고 합니다. “당신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마더 테레사가 대답하기를, “나는 이들을 구제하는 자로 사는 게 아니라,비참한 삶을 사는 이들을 존중하면서,이들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귀한 존재로 바라보고 지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인격 존중이 기본이라는 뜻입니다.존중하니까 먹을 것 주고,존중하니까 가서 함께 지내고.존중하니까 물자도 대 주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공감과 존중의 태도에서 사람이 살아나는 것입니다.그렇지 않으면,구제 자체도 권력 관계가 생깁니다.주는 자는 갑이고,받는 자는 을이 되어버립니다.거기에 우월감이 있고,거기에 종교성이 들어갑니다.이게 아니고,예수님은 우리가 서로 친구가 되라고 하셨습니다.친구가 되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존중이 필요합니다.부자고 가난하고 나이고 차이가 없습니다.거기에 존중이 있습니다.존중이 없으면 절대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친구의 특징은 대화가 되는 것입니다.대화를 안 한다는 것은 무시한다는 것입니다.당신 말은 들을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4명의 여자가 커피숍에 앉아서 얘기하는데 이상한 풍경이 보였습니다.각자 자기 얘기만 하는 겁니다.친구 아닙니다.친구같이 보일 뿐입니다.각자 자기 말만 하고 있잖아요!너 말은 들을 것도 없다는 것이죠!내 말만 들으라는 것이죠?존중해 주는 것 중요합니다.

약3:9절 후반부에 보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우리가 사람을 저주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어떤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누구도 무시하면 안 됩니다.그 존재 자체에 가치가 있습니다.우리 교회가 은혜가 강물같이 흐르길 원합니다.그러기 위해서는 머리로만 안됩니다.마음이 필요합니다.공감이 있어야 하고,존중하는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아픔을 느낄 수 있길 바랍니다.그게 아름다운 성도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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