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예수님이 이런 표적을 보이셨네요!

윌리엄 제임스가“종교체험의 다양성”이라고 하는 책을 썼습니다.그 책 속에서 성숙한 종교적 인격,그걸 가르쳐서‘성자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이걸 네 가지로 표현하는데요,첫째가 세상 일상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큰 삶을 비전으로 삼고 산다는 겁니다.
일상적인 이해관계,조금 더 벌면 어떻고 못 벌면 어때.잃으면 어떻고 얻으면 어때.오래 살면 어떻고 적게 살면 어때요?그게 중요하질 않아요.보다 넓고 크고 위대한 세상을 바라보며 사는 거죠.

둘째는,절대자인 하나님과 자신의 생명 사이에 친애의 연속성을 가지고 산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요.그 사랑 안에 내가 있어요.그가 내 안에 있고 내가 그 안에 있어요.내가 그 섭리 안에,내가 있어요.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에 내가 고용되고 있어요.”그러한 가치관,그러한 정체성을 가지고 사는 것이죠.

셋째는 이기적 폐쇄성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고 초월적 마음의 기상을 지니고 산다는 겁니다.이기적인 폐쇄성.여기에 노예가 될 때 사람은 비참하지요?나 중심으로 한 생활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산다는 겁니다.그것이 바로 성도의 모습이요.

넷째는 감정의 중심이 조화 있는 사람과 애정으로 진행된다는 겁니다.율법적이고 도덕적 인격과는 달리 초월적 차원에서 산다는 것이죠.가장 무서운 것이 율법이요 또 무서운 것이 죽음입니다.율법과 그리고 사망 권세를 다 이기고 초연하게 자유인으로 살면서,누구도 그를 심판할 수 없고,누구도 비판할 수 없고,누구도 말리지 못하는 당당한 사람으로,사랑을 베풀며 산다는 것입니다.

성자성을 가진 사람의 예를 들면,사도행전에 나오는 베드로입니다.베드로는 부활 사건 앞에서 부활 신앙을 가지고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았습니다.부활 신앙 증인으로 살았습니다.용기 있게,거침없이,온전한 자유인으로 살았습니다.이렇게 살아갈 때 주님께서 그와 함께하셔서 큰 표적이 따랐습니다.

행3장을 보면,성전 미문에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벌떡 일으킵니다.이로 인하여 사람들이 깜짝 놀랄 때“놀랄 것 없습니다.당신들이 죽인 예수가 부활하셔서 나와 함께 계셔서 여기서 이 표적을 주셨습니다”라고 겸손하게 증거합니다.오직 부활의 능력,오직 부활 증인,부활 신앙으로 살 때 비록 모순된 세상을 살면서도 밝은 세상을 바라보고,절망으로 치닫는 속에서도 역사 저 건너편에 있는 밝은 세상을 바라보면서 가장 활기 있고 용기 있고 생명력이 넘치는 그런 증인의 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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