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가치

“눈물의 가치”

‘애통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라고 하면,이것이 무슨 넌센스냐,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이 세상 많은 사람들은 쾌락에 미쳐 있고 스릴을 추구하고 재미와 오락에 시간과 돈을 씁니다.할 수만 있으면 애통과 고통은 피하려고 합니다.그런데 이것이 무슨 소리냐,기독교가 마조히즘(masochism)의 종교냐,피학적인 종교냐,일부러 울고 일부러 고통스러워하고 일부러 치고받고 하는 것이 기독교냐 하고 오해하는 내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문학에 카타르시스(catharsis)라는 기능이 있지 않습니까?울 때 정화작용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일반적인 것으로 볼 때도 울 수 있다는 것은 능력입니다.사람들을 보면, (100%맞는 것은 아니지만 경험에서 나온 것입니다)성격이 비교적 좋은 사람이 누구냐 하면,발작적인 신경질을 안 부리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 잘 우는 사람입니다.잘 우는 사람은 비교적 건강하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반면에 울 줄 모르는 사람은 항상 문제가 있습니다.폭발적인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은 어떤 사람이었느냐 하면 어렸을 때부터 고통 가운데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형들을 만났을 때도 울지 않았습니다.요셉이 울었다는 얘기가 성경에 어디 있습니까?구덩이에 있을 때 한 번 울었다는 것이 나옵니다.그때 애걸하고 울었다는 얘기가 나오고 그다음부터 울지 않습니다.노예로 팔려 가도 울었다는 소리가 없고요.보디발의 아내가 무슨 말을 하든 울지 않았고 감옥에서도 울지 않았습니다.그것이 일종의 상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삶 가운데 총리가 되게 하는 은혜의 역사를 주셨지만,그것으로 다 치유가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그가 비로소 치유되기 시작했던 때가 언제입니까?베냐민을 바라보면서 혼자 가서 울고 나왔다고 하지 않습니까?그때가 치유의 때라고 생각을 합니다.사람들이 큰 상처를 입으면,무너지지 않으려고 자기 혼자 버티는 힘듦이 있습니다.언제 그런 사람들이 치유가 일어나느냐 하면 울 때부터입니다.자기 아픔을 내어놓고 울 때부터 치유가 되더라는 것입니다.그런 의미에서 울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입니다.

아브라함도 아내를 잃었을 때 울었습니다.다윗도 고통 속에 울었습니다.어느 정도로 울었느냐 하면(시편41편 참조),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될 정도로 울었다고 얘기합니다.다윗의 능력이 여기에 있습니다.어떻게 다윗이 음악을 만들고 어떻게 다윗이 감수성이 예민하고 다윗이 왜 찬송할 수 있는지 아십니까?울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목사의 설교가 좀 깊이가 있어 진다라는 소리를 들을 때가 언제냐면,울기 시작할 때입니다.영혼에 대한 눈물이 있을 때!눈물은 우리를 깊이 있게 만듭니다.삶의 모든 부분을 놓고 울어야 합니다.이 나라의 문제를 놓고 울어야 하고 가정의 문제를 놓고 울어야 합니다.그러면 하나님의 위로가 있습니다.

Similar Posts

  • 두려움을 이기게 만든 찬송 563장

    “두려움을 이기게 만든 찬송563장” 우리가 살면서,마음이 흔들리고,불안하고,두려운 이유는 내가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결과는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그래서,주가 함께하심만 체크하기 바랍니다.두려움 없이 세상의 한복판에 서서,담대히 살 수 있는 비결은, ‘나의 강함’이 아니라, ‘주님과의 동행’임을 체험하는 것입니다.이러기 위해서 기도에 힘쓰시고,성경을 날마다 듣기 바랍니다.하나님 말씀이 개미 소리처럼 작게 들리다가,어느 순간,한 구절,한 구절이 천둥처럼 들릴 때가 있을 것입니다.주님의 동행이…

  • 놀라지 말라! 충격받지 말라

    “놀라지 말라! 충격받지 말라” 사람들이 큰 충격에 빠지는 것을 패닉이라고 하고, 너무 놀라서 정신이 나갈 정도 되는 것을 멘탈이 붕괴되었다, 줄여서 멘붕이라고 합니다. 옛날에 없던 신조어입니다. 옛날 표현으로는 정신 나갔다! 입니다. 패닉과 멘붕은 인생에서 안 좋은 징후입니다. 요 7장 보면,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시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 놀라움은 안 좋은 징후입니다. 자기들을 기분 나쁘게 하는…

  • 돈과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

    ”돈과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 가랑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거리에서 갑자기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나이70쯤 되어 보이는 할머니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자살을 한 것이었습니다.앰뷸런스가 와서 할머니는 곧 병원으로 실려갔고,뒤이어 달려온 경찰들이 사람들을 해산시키고는 자살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할머니의 아파트로 올라갔습니다. 실내는 온갖 고급 도구와 사치스런 장식품들로 이루어져 있었지만,왠지 썰렁한 기운이 느껴졌습니다.이 정도 살림으로 보았을 때 경제적인 어려움은 아닌…

  • 본능대로가 아닌 사명대로 사는삶

    본능대로가아닌,사명대로사는삶 사람들사는것을보면,대부분본능대로사는것같습니다.본능대로사는삶을,성경에서는이방인의삶이라고합니다.마6:31-32절을보면,이방인의삶을설명하고있습니다. “6:31그러므로염려하여이르기를무엇을먹을까무엇을마실까무엇을입을까하지말라6:32이는다이방인들이구하는것이라” 육체의욕구를채우기위해서사는것이본능에충실한삶,이방인의삶입니다.본능에충실한사람은항상“자기처지”에집중하며삽니다.그래서억울한게많습니다.이유없이괴롭히는사람들에게“나쁜놈들”이란말이나옵니다.사람들에게만그러는게아니고,자기를돌아보지않는하나님에게“어떻게이럴수가!”라고원망합니다.자기본능에역행하는것은전부원망거리가됩니다.부부의세계에서,바람을피우던남편이아내에게발각되자하던말이대한민국에유행어가되었습니다. “사랑에빠진것이죄는아니쟎아!”마음이상할대로상한아내에게하는말이었습니다.절제와책임감이라고는찾아볼수없고,오직자기본능대로불륜행각을벌이고서는조강지처에게푸념하는것입니다.본능대로살면,결과는허무감,동물적인삶,관계파괴등안좋은결과를가져오게됩니다. 반면,본능대로사는삶과대조적으로성경이말하는다른삶이있습니다.사명으로사는삶입니다.사도바울은사명으로살았습니다.그의사명은복음이었습니다.그래서,사도바울의인생은억울함이없습니다. “자기처지’에집중하지않기때문입니다.바울은자기처지가힘들어도,감옥에서풀려나기를기도하지않았습니다.다만“전도할문”이열리기를기도했고,자기사명,전도의사명이잘되기를기도했습니다. 본능과사명의차이가무엇일까요?목적의유무입니다.보통사람들에게“당신은목적없이산다”고말하면화를냅니다.나를그런형편없는사람으로보느냐며했던말취소하라고합니다.그래서,취소하려고하는데,실제사는걸보면,목적없이“자기처지”에만골몰하고있는모습이여전히눈에들어옵니다.굳이말하면,자기처지가목적입니다. 마6장에보면,예수님께서본능대로사는이방인의삶을설명하고,목적있는삶,사명의삶을설명하는구절이있습니다. “마6:33그런즉너희는먼저그의나라와그의의를구하라.” “그의나라와그의의를구한다”라는말의뜻은목적가지고살라는것입니다.자기처지의좋고나쁨에목숨걸지말라는뜻입니다.진정한성공이무엇입니까?성공한인생이란처지에관계없이하나님이주신목적을이루는삶이라고할수있습니다.천성교회모든성도가모두성공자되기를바랍니다.다른말로,사명자되기를바랍니다.고달파보여도억울하지도않고,기쁜삶!어려워보여도신나는인생!하늘에상이큰인생을살기를바랍니다.

  • “십자가를 보면 하나님 사랑이 보인다!”

    “십자가를보면하나님사랑이보인다!” 탈북자청년과성경을공부한적이있습니다.공산주의가나쁜이유는,사람의영혼을파괴하기때문입니다.정죄하게만들고,비판하게만들어서,자신을무가치하게여기게만들기때문입니다.그래서인지,하나님과하나님사랑을가르쳐주어도쉽게받아들이지못합니다.그런데,하나님이사랑하신다는것을믿게되고나면,감동합니다.‘당신은사랑받기위해태어난사람“찬양을가르쳐주면,지칠줄모르고부릅니다. 제게도이런감동이있었습니다.십자가를통해서,하나님이나를얼마나사랑하셨는지깨달았기때문입니다.하나님이사랑하신다고해도,감이오지않았었는데,십자가를공부하면서주체할수없는감동이밀려왔습니다.어떤사람이누굴사랑하고있다!하는것을볼려면,뭘보면알수있을까요?그사람을위해서희생하는것을보면알수있습니다.저는십자가를통해서하나님께서독생자를인간으로보내셨다는것이얼마나큰희생인지알게되었습니다.하나님께서인간으로오셔서,여자몸에나시고,기저귀도차시고,마리아와요셉에게엄마,아빠라고불러야되고,또엄마/아빠라는소리를들어야되구요.이거,하나님편에서는모욕아닙니까?전지전능한모습도버려야하구요,팔레스틴조그만마을에태어나셔야하고,이건엄청난희생입니다.거기다가,십자가를지신예수님이어떤치욕과모욕을당하셨습니까?하나님이아무리사랑한다고해도믿지않으니까,내아들을이렇게낮추고,이렇게모욕을받도록하고,이렇게희생을해서라도,나하나님이신두현너를사랑한다!는것이느껴지게되었습니다.십자가를깨닫고나서는“제가하나님사랑을더느끼게해주세요!이런기도를할수없게되었습니다.하나님이이이상어떻게더하나님사랑을보일수있겠습니까?저는십자가를통해서,제가하나님의사랑의대상이라는것에늘감동이구요,설교준비하다가도울컥울컥합니다.지금도‘당신은사랑받기위해태어난사람’복음성가를부르라면, 100번, 200번도부를것같습니다. 당신은사랑받기위해태어난사람,당신의삶속에서그사랑받고있지요.태초부터시작된하나님의사랑은,우리의만남을통해열매를맺고당신이이세상에존재함으로인해,우리에게얼마나큰기쁨이되는지당신은사랑받기위해태어난사람,지금도그사랑받고있지요

  • 믿음은 짝사랑이 아니다

    우린“내가믿는다”그러면,나만믿는다고생각하는데,믿음은그런게아닙니다.믿음은짝사랑이아닙니다.내가하나님을믿지만,하나님도나를믿어주신다는겁니다.우리가믿음을갖고나서,충성과헌신을하게되는것은,의무가아닙니다.감격이고,자발적인것입니다.우리가하나님을믿습니다.그런데,더놀라운것은,우리같은부족한사람들을하나님이믿어주신다는것입니다. 만약에제가하나님이라면,신두현목사못믿습니다.부족함이많아서,쓸만한목사로대체할것같습니다.그런데,믿어주시니,몸둘바를모르겠습니다. 성도여러분들도그렇게생각하지않습니까?어떻게나같은사람이천성교회집사라고할수있을까?어떻게나같은사람이장로이고,권사란말인가?내가내자신을너무나도잘아는데…나의내면은썩을때로썩었고,내안에선한것이없는데,나같은죄인이어떻게그런거룩한직분을맡을수있지?이런생각안드십니까? 롬12:1절을묵상하다가,믿음은짝사랑이아니라는것을깊이깨닫게되었습니다. 12:1그러므로형제들아내가하나님의모든자비하심으로너희를권하노니너희몸을하나님이기뻐하시는거룩한산제물로드리라이는너희가드릴영적예배니라 무슨뜻입니까?우리가거룩한제물이되어바치는것이아니라,우리를바치면,하나님이거룩하게하신다는것입니다.그러니까, “나는헌신하고싶어도자격이되지않아서못합니다!”라고말하는것은겸손도아니고틀린생각이라는것입니다.내가부족함투성이인데도요, “하나님나를써주세요!”하면,하나님께서기뻐하면서받으신다는것!!!이게얼마나큰특권인지아십니까?하나님이날믿어주신다는겁니다. 지금경기가안좋은데,빌게이츠를찾아가서,내가본사에서일하고싶다고그러면,뭐라고할까요?경비불러서쫓아낼겁니다.그런데,하나님에게내가몸을바쳐서,나를써달라고할때,하나님께서이걸기뻐하면서받으신다는겁니다.빌게이츠정도가아닙니다.천지만물을창조하신하나님께,‘나좀써달라!’고하는데,기뻐하면서써주신다는것입니다. 예수믿고나서, 특별히 목사가 되고 나서눈물이더많아진것같습니다.말씀전할때,목사로서부적격한데,써주시는것이감사한생각이들어서감사의눈물이나옵니다. 성도여러분들도그러시죠?멸망으로가던삶이바뀌었고,죄악가운데서자신을상처입히고,이웃을상처입히며살던삶이바뀌지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기쁘게써주시는인생이되었지요?우린완벽한사람이되어가지고헌신하는것이아닙니다.‘하나님,나를써주세요!’하면,세상은너는쓸모가없다할지몰라도,하나님은기쁘게우릴받아써주십니다.이유가무엇입니까?우릴믿어주신다는겁니다.하나님이나를더많이믿고써주신다는것입니다.그러므로,믿음은짝사랑이아닙니다.내가하나님을믿지만,그보다더,큰것은하나님이나를믿고,하나님나라의사명을맡겨주신다는것입니다. 그러므로,하나님은우릴천만배,억만배믿어주시는데,우리도작년보다10배정도더믿어드리면좋겠습니다.하나님의부르심과인도하심에대한의심다버리고,하나님을더많이믿어주세요.때론내처지가이해,공감,납득이안되어도,내게좋은길,가장완전한길주실것을믿어주세요.하나님만우릴짝사랑하는것같이느끼지않게요!믿음은짝사랑아닙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