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완벽한 것을 기대하지 마세요!

너무 완벽한 것을 기대하지 마세요!

창6:9절은 노아에 관하여 이렇게 평가를 합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노아 그러면, 우리가 주눅이 듭니다. ‘노아는 완벽하게 산 사람, 나하고 비교가 쉽지 않다. 노아는 의인, 노아는 당세 완전한 자,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한 자인데, 나는 악인, 나는 당세 모자란 자, 나는 하나님과 가끔 동행해’ 이러면서요.

어떻게 이런 의인이 있을 수 있을까요? 의인이란 단어는 로마서와 충돌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나니 (롬3:10). 노아는 어떻게 완벽했을까요? 완벽, 의인이란 말을 다른 의미로 해석해야 성경과 충돌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시대마다 시대의 문화가 있습니다. 한 개인이 완전히 저항할 수 없습니다. 뉴욕 공기를 안 먹고 사는 사람 없습니다. 공기 같은 문화도 마셔야 합니다. 이런 문화 속에서 노아가 하나님께 인정받았다는 것입니다. 인정받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히11:7절을 보면,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일이란 말은, 노아 당시에는 비가 한 번도 오지 않던 시대라는 뜻입니다. 경고의 말씀을 들었다는 것은, “비가 하늘에서, 내릴 것이다. 그것도 120년 후에 내릴 것이다.” 이런 말씀을 하나님께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노아는 120년 걸려서 산꼭대기에 배를 지었습니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 말씀 듣고 산에 가서 도끼 내려찍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맙니다. 도끼가 없습니다. 애프터가 없습니다. 믿음은 반응입니다. 반응이 중요합니다. 오늘도 예배 시간에 말씀 들으면, 도끼를 들어야죠? 삶을 피상적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미니 시리즈 드라마처럼, 한, 두 편, 몇 편 지나면, 결론이 나는 그런 게 인생이 아닙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루아침에 변화되는 것이 아니므로, 믿음은 반응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 다니는 성도 중에 뭐든지 한 번에 변화될 거로 생각하니까, ‘완벽하다, 불량하다’ 사람을 딱 2가지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생길까요? 신앙생활 하다 보면, 예수 믿은 사람끼리 싸우면 용서가 안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싸우면 오래갑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세상 사람들은 술집 가서 술 한잔 마시고, 다음 날 어깨동무합니다. 왜 그럴까요? 술집에서는 서로에 대한 지나친 기대가 없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죄인임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웬만큼 잘하면, 그 잘하는 것을 보고 용서하고 풀어지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기대 수준이 너무 높습니다. 거의 예수님 정도의 도덕성을 기대합니다. 그러니 항상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완벽주의를 조심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잘하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을 보려고 하고, 실망스러운 한 부분을 보면, 그 상처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습니다. “신자가 저럴 수 있나?”라고 되새기며 용서하지 못합니다.

상대에 대해서 예수님 수준 가지고 접근하는 이것이 문제입니다. 최고의 기준 가지고 검증하면 다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주의로 가면 다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변화의 과정을 밟아야 합니다. 들은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이것이 한걸음입니다. 노아 되는 것 어렵게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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