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보다 더 무서운 것

“마귀보다 더 무서운 것”

우리의 최대 우상은 돈도 아니고,권력도 아니고 자기 자신입니다.우상숭배 하는 이유도,결국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육체적 욕망을 위해서,비너스 우상을 만들고,술/음주 너무 좋아하니까,박카스(술의 신)을 만들고요,내 삶의 풍요,풍족을 너무 좋아하니까,바알 우상을 만들었습니다.나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것입니다.우리는 마귀를 두려워 한다 그러는데,사실 마귀보다,더 두려운 것은 나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왜냐하면,우리는 욕망덩어리고,또 놔두면,우상이 되는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십자가를 통과한 사람은,갈라디아서5장24절 말씀처럼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입니다.모든 인생 보십시오.정욕으로 살고,탐심으로 삽니다.무슨 결정 하는 것 보면,다 이 두 가지 갖고 합니다.아닌 척하는 사람이 자기를 속이는 겁니다.정욕과 탐심,이것이 인간입니다.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이 정욕과 탐심을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우리가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려면,제일 힘든 게 자아입니다.

인간 관계들도 상처주는 일 생기는 것 보면,내 자아가 쎄가지고 그러고요,또 교회에서도 힘들어하는 것 보면,내 자아도 쎄가지고 그렇습니다.죽지 않은 자아가 짐이 됩니다.한순간 방심하면,탐심과 정욕에 넘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신학교 다닐 때,히브리어 시간에 퀴즈를 보는데,단어1개가 생각이 안 나서,고개를 흔드는데,옆 친구 그것이 딱 보이는 것입니다.제가 그것을 보고 썼을까요?안 썼을까요?썼습니다.좋은 점수 맞아야 한다는 탐심 때문에요.정말 한순간에 방심하니까,그렇게 되었습니다.제가 수업 내내 괴로와서,교수님에게 실토하고.그거 틀린 것으로 해 달라고 했습니다.우리 성도는 자기 부인 잘해야지,그렇지 않으면,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는 죄를 반복해서 지을 수 있습니다.

1998년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세계교회협의회1차 모임을 할 때,성찬식 하는데,관이 있었다고 합니다.누가 죽었는가 보았더니,거울이 있었다고 하는데요,이렇게 들여다보니까,자기가 보였다고 합니다.내가 죽어야 한다는 의미지요.성찬식은 내가 죽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내가 죽었다는 것은 입으로 시인하는 게 중요합니다.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십자가 앞에 죽은 건데 느낌이 잘 안 오기 때문에,죽었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그래서,내 욕심이 나오고,정욕이 나오면, “너 죽었잖아!”선언하라는 것입니다.

롬6:6절 말씀을 보면,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죽었다는 것입니다,죽었는데 뭐 하는 거야?이렇게 자신에게 말하라는 것입니다)신앙생활이 말씀을 근거로 해야 합니다.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세례를 받으므로 죽었다 그러면 죽었다고 선언하고,그걸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느낌으로만 살면 안 됩니다.느낌과 말씀은 다릅니다.우리가 죽었습니다.그런데,느낌은 안 죽었습니다.말씀은 죽었다고 하니까, “넌 죽었다”선언하는 게 중요합니다.넌 이미 죽었어!이게 굉장히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덤빌 때도, “마귀,너는 죽었어.너는 패배한 거야!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패배한 거야!”그러면,마귀가 기가 팍 죽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나에 대해서도,내가 죽었음을 선언하시기 바랍니다.이 선언이,내 부정적인 느낌을 꺾어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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