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가 변해야 교회가 부흥한다III
“성도가 변해야 교회가 부흥한다III-
예수님을 거리두고 따르지 말라”
예수님이 코로나도 아니신데, 거리를 두고 따르는 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여러분! 니고데모는요, 예수님을 따르기는 따랐지만,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랐습니다. 이 점이 현대 교인과 닮았습니다.
달은 지구에 가까이 오지도 않고, 멀리 가지도 않고 항상 지구 주위를 돕니다. 주위를 돈다고 해서 위성이라고 합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께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늘 주변만 맴돌며, 달처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랐습니다. 니고데모는 신약 성경에 3번 등장합니다. 그것도 요한복음에만 3번 등장합니다.
요 3장 – 밤 중에 찾아와서 중생을 묻고 돌아갔습니다.
요 7장 – 예수님을 핍박하는 동료 바리새인들 앞에서 예수님을 변호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요 19장 –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아리마대 요셉이란 사람이 예수님 시신을 자기가 산 무덤에 모실 때, 이 요셉과 함께 와서, 몰약과 향료를 가져와 예수님 몸에 바르고 시신 쌓는 일에 동참했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한 번도 핍박하거나 증오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하게 헌신한 것도 아니고 항상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랐습니다. 현대 교인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현대 교회의 교인 중에 이런 분들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에 왔는지 안 왔는지, 직분을 가지고 사는 것은 싫고, 예수 믿어야 되는 것은 알고 있어 교회는 떠나지 않지만, 교회의 지나친 관심은 싫어합니다. 예수님을 떠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 믿어야 구원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요일이면, 교회를 맨 먼저 옵니다. 그리고, 빨리 예배 보고 빨리 갑니다. 교회 오래 있으면, 교인이 해야 할 의무를 해야 할 것 같아 주일날 일찍 왔다가 가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많은 현대 교인들이 니고데모를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위성 같은 성도, 달 같은 성도를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런 태도를 보이고 살까요? 알 것은 다 알지만, 은혜 체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현대 교회를 보면, 예수님을 수십 년간 믿어도 은혜의 강물에 들어가지 못하고, 듣긴 들어서 아는 것은 많은 교인이 많은 것 같습니다. 성경의 줄거리를 잘 압니다. 교회는 이런 곳이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진짜 신앙인인지, 아닌지 다 압니다. 판단도 잘 내립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에게 뜨거운 은혜 체험이 없다는 것입니다. 헌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처럼 쓰임 받을 수 있는데, 겨우, 간신히 자신만 구원받고 마는 성도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자리를 떠나야 하겠습니다. 뜨거운 은혜를 체험하고, 뜨거운 헌신의 고백을 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