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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보다 더 무서운 것 신두현 목사 2022-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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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보다 더 무서운 것

 

우리의 최대 우상은 돈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고 자기 자신입니다. 우상숭배 하는 이유도, 결국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육체적 욕망을 위해서, 비너스 우상을 만들고, /음주 너무 좋아하니까, 박카스 (술의 신)을 만들고요, 내 삶의 풍요, 풍족을 너무 좋아하니까, 바알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나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귀를 두려워 한다 그러는데, 사실 마귀보다, 더 두려운 것은 나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욕망덩어리고, 또 놔두면, 우상이 되는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 십자가를 통과한 사람은, 갈라디아서 524절 말씀처럼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입니다. 모든 인생 보십시오. 정욕으로 살고, 탐심으로 삽니다. 무슨 결정 하는 것 보면, 다 이 두 가지 갖고 합니다. 아닌 척하는 사람이 자기를 속이는 겁니다. 정욕과 탐심, 이것이 인간입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이 정욕과 탐심을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려면, 제일 힘든 게 자아입니다.

 

인간 관계들도 상처주는 일 생기는 것 보면, 내 자아가 쎄가지고 그러고요, 또 교회에서도 힘들어하는 것 보면, 내 자아도 쎄가지고 그렇습니다. 죽지 않은 자아가 짐이 됩니다. 한순간 방심하면, 탐심과 정욕에 넘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학교 다닐 때, 히브리어 시간에 퀴즈를 보는데, 단어 1개가 생각이 안 나서, 고개를 흔드는데, 옆 친구 그것이 딱 보이는 것입니다. 제가 그것을 보고 썼을까요? 안 썼을까요? 썼습니다. 좋은 점수 맞아야 한다는 탐심 때문에요. 정말 한순간에 방심하니까, 그렇게 되었습니다. 제가 수업 내내 괴로와서, 교수님에게 실토하고. 그거 틀린 것으로 해 달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는 자기 부인 잘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는 죄를 반복해서 지을 수 있습니다.

 

1998년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세계교회협의회 1차 모임을 할 때, 성찬식 하는데, 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누가 죽었는가 보았더니, 거울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들여다보니까, 자기가 보였다고 합니다. 내가 죽어야 한다는 의미지요. 성찬식은 내가 죽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죽었다는 것은 입으로 시인하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십자가 앞에 죽은 건데 느낌이 잘 안 오기 때문에, 죽었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욕심이 나오고, 정욕이 나오면, “너 죽었잖아!” 선언하라는 것입니다.

 

6:6절 말씀을 보면,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죽었다는 것입니다, 죽었는데 뭐 하는 거야? 이렇게 자신에게 말하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말씀을 근거로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세례를 받으므로 죽었다 그러면 죽었다고 선언하고, 그걸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느낌으로만 살면 안 됩니다. 느낌과 말씀은 다릅니다. 우리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느낌은 안 죽었습니다. 말씀은 죽었다고 하니까, “넌 죽었다선언하는 게 중요합니다. 넌 이미 죽었어! 이게 굉장히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덤빌 때도, “마귀, 너는 죽었어. 너는 패배한 거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패배한 거야!” 그러면, 마귀가 기가 팍 죽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나에 대해서도, 내가 죽었음을 선언하시기 바랍니다. 이 선언이, 내 부정적인 느낌을 꺾어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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